멸치의 생식능력
바다에는 2만 여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대식구를 거느린 놈은 ‘너도 생선이냐, 할 정도로 작고 힘없이 보이는 멸치이다. 이들은 바다 속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먹이사슬에서 낮은 단계에 속하는 무리로서 주로 플랑크톤을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멸치는 어떻게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는 몸의 소형화, 다산, 빠른 부화, 조기 성숙 등의 적응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육식성 어류의 먹이가 되어야 할 운명인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자라서 많은 새끼를 번식시켜야 하므로 다른 물고기보다 짧은 생식주기를 갖는다. 한 마리의 멸치가 낳는 알은 보통 4~5천개 정도인데, 이들의 작은 몸집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숫자이다. 연안 회유성 물고기로 대륙붕 해역에서 주 산란기는 5~8월이나, 한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년 내내 산란한다. 멸치는 14℃ 이상의 수온과 30 psu 이상의 염분을 동시에 만족해야 산란하며, 수심 20~30m 층에서 한밤중에 산란한다.
멸치의 분포 및 특성
멸치(Engraulis japonicus)는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로, 몸은 길고 원통 모양이다. 몸 빛깔은 등 쪽이 암청색이고 배 쪽은 은백색이며, 옆구리에 은백색의 세로줄이 있다. 양 턱에는 작은 이빨이 한 줄 있고, 눈에는 눈꺼풀이 있으며, 옆줄은 없다.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에는 가시가 없다. 등지느러미는 1개로 몸의 중앙에 위치하며, 가슴지느러미는 배쪽에 치우쳐 있다. 주로 수심 0∼200m 정도의 대륙붕 해역에서 생활한다. 표면 가까운 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지내는데, 봄과 여름에 연안에서 생활하다가 좀더 북쪽으로 이동한다. 유어일 때는 부유성 해조류를 따라 다닌다. 먹이는 요각류, 작은 갑각류, 연체동물의 유생, 어류의 알 등이다. 산란은 봄, 가을 2차례에 걸쳐 일어나며, 수심 20∼30m층에서 밤중에 산란한다. 수명은 1년 반 정도이다. 사할린섬 남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연근해에 분포한다. 전세계적으로 멸치속 어류에는 8종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종들은 연안에 서식한다. 페루 앞바다에서 최대 어획량을 기록한 멸치류는 Engraulis ringens로서, 엘니뇨의 영향으로 어획량이 감소되기도 하였다. 멸치는 호주산 멸치 E. australis 및 유럽산 멸치 E. encrasicolus와 매우 비슷하여 식별이 곤란하지만,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별종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
한자로는 멸치(蔑致), 멸어(滅魚), 멸치어(滅致魚)로 불리는데,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멸치란 이름에 얽힌 또 다른 하나의 설은 물에서 나는 물고기의 대명사인지라 한자어로는 수어(水魚)라 하며, 고유어로는 물의 고어인 ‘미리’가 ‘며리’, ‘멸’로 음운변화하고 물고기를 뜻하는 접미사인 ‘치’를 합성하여 멸치로 되었다고 한다. 영어로는 Anchovy, Half-mouthed sardine, Half mouth sardine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Engraulis japonicus를 특히 Japanese anchovy라 부른다. 일본 이름은 가다구찌이와시, 히시꼬이와시라 하는데, 가다구찌이와시는 아래턱이 위턱에 비하여 몹시 작아 정어리류 중 턱이 하나밖에 없는 종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이름은 제, 제어, 묘자 등으로 표현한다.《우해이어보》에서는 멸아, 《자산어보》에서는 멸어라 하였고 한자어로 추어라 하였다. 《재물보》와 《전어지》에서는 몃이라 하였다. 멸치는 불리는 이름도 많고 지방마다 각기 다르다. 제주에서는 행어, 남해안에서는 멸오치, 전남에서는 멸, 강릉에서는 큰 멸치를 앵매리, 포항에서는 중간 크기의 멸치를 드중다리, 중다리, 작은 것을 사와멸치, 눈퉁이, 진도에서는 국수멸이라는 방언을 갖고 있다.
크기에 따른 이름
일반 어업인들이 크기에 따라 멸치를 달리 부르는데, 거의 일본말을 혼용하고 있다. 가장 작은 것을 ‘실치’라 부르고, 크기에 따라 시루쿠(2cm 이하), 가이루(2cm 정도), 가이루고바(가고바, 비늘돋치기: 2.0-3.1cm), 고바(3.1-4.0cm), 고주바(4.0-4.6cm), 주바(4.6-7.6cm), 오바(7.6cm 이상), 그리고 가장 큰 것을 ‘정어리’라고 부르는데, 이는 진짜 정어리가 아니고 정어리만큼 크다고 붙여졌을 것이다. 실치는 어종에 관계없이 실처럼 가는 정도로 작은 크기의 치어를 부르는 말이고, ‘비늘돋치기’는 말 그대로 비늘이 돋아나는 정도 크기의 멸치를 일컫는 우리말로 참 예쁜 느낌이 든다.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수산물 검사법에 의하면 건조품 중 전장 7.7cm 이상을 대(大)멸, 7.6~4.6cm를 중(中)멸, 4.5~3.1cm를 소(小)멸, 3.0~1.6cm를 자(仔)멸, 1.5cm 이하를 세(細)멸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